신용회복경험담
평범하고 성실했던 농촌의 삶 (약 15%)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7.01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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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부: 평범하고 성실했던 농촌의 삶 (약 15%)
전남의 한 시골 마을에서 남편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지 어느덧 20년이 넘었습니다.
벼농사와 고추, 마늘 재배를 주로 했고, 계절마다 품앗이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농촌 아낙이었죠.
자녀 둘은 모두 도시에서 취직해 나가 살고 있어, 우리 부부는 이제 둘이서 조용히 살아가는 중입니다.
수입은 넉넉하진 않아도, 절약하며 살면 큰 걱정 없는 생활이었어요. 매년 수확 끝내고 마당에서 삶은 옥수수 먹으며
“올해도 무사히 넘겼구나” 하던 그 평범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2. 전개: 전화 한 통이 불러온 삶의 균열 (약 25%)
모든 일의 시작은 전화 한 통이었습니다.
은행이라고 소개한 쪽에서 “정부 지원 투자상품에 가입하면 이자가 확정되고 원금 보장된다”며 설득하더군요.
처음엔 의심도 했지만, 워낙 말을 그럴싸하게 하고, 실제 은행 명의 서류도 보내줘서 안심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투자는 몇 달 새 5천만 원 가까이로 불어났고, 부족한 자금은 저축은행과 대부업체에서 빌렸습니다.
심지어는 대출을 유도한 쪽에서 “추가 자금 넣으면 원금 보전된다”는 말에 넘어가 더 많은 돈을 쏟아부었고요.
결국 모든 게 사기였다는 걸 알았을 땐,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총 채무액은 9,200만 원, 이자는 매달 80만 원이 넘게 나갔고, 원금은 줄 생각을 안 했습니다.
밤잠을 설치는 날이 많아졌고, 남편에게 말도 못 한 채 혼자 끙끙 앓았습니다.
3. 위기: 감당할 수 없는 무게, 무너지는 자존감 (약 20%)
처음 사기임을 깨달았을 때는 머리가 하얘졌습니다.
창피하고 바보 같았고, 이런 실수를 한 스스로가 너무 미웠어요. 남편에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습니다.
한 달, 두 달 카드 돌려막기로 버텼지만 이자만 쌓이고, 결국 농기계 수리비까지 밀리게 되자
남편에게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의외로 남편은 화내기보다 “지금부터라도 다시 시작하자”고 말해주더군요.
그때 처음 개인회생이라는 제도를 알아보게 됐습니다.
처음 상담받을 땐 두렵고 수치스러웠지만, 저 같은 사람들도 많다는 말에 조금은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제 잘못이지만, 다시 살 기회는 주어지겠지”**라는 생각으로 신청을 결심했습니다.
4. 해결: 개인회생을 통한 작은 숨통 (약 25%)
개인회생 절차는 생각보다 체계적이었습니다.
상담부터 법원 인가까지 약 5개월 정도 걸렸고, 소득과 지출 내역, 채권자 정보 등을 꼼꼼히 제출해야 했습니다.
법원에서 인가받은 변제계획은 월 32만 원씩 3년간 상환, 나머지 채무는 면책되는 조건이었어요.
기초생활수급자는 아니지만, 농사 외에 고정 수입이 거의 없어서 최저생계비 기준으로 산정된 결과였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건 감정적인 부분이었습니다.
농촌에서 소문은 빠르고, “왜 그런 걸 믿었냐”는 말들이 들릴까 두려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죠.
하지만 법원에 출석해 제 사정을 말하며, 저 자신도 제 삶을 돌아보고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5. 결말: 다시, 삶을 경작하며 (약 15%)
지금은 변제 2개월 차입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고정적으로 빠져나가는 변제금이 생기면서 돈 관리도 더 철저하게 하게 되었고,
남편과 함께 생활비를 계획하며 오히려 대화가 많아졌습니다.
올해는 고추 수확도 잘 되었고, 한 달에 한 번은 도시 사는 아이들 얼굴도 볼 수 있어 마음이 놓입니다.
물론 다시는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늘 가슴에 품고 살고요.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도 혹시 누군가의 말에 속아 무너진 분들이 있다면 꼭 전하고 싶습니다.
혼자가 아닙니다. 용기 내시면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저도 그랬듯, 우리 모두 다시 일어설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