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회복경험담
아이 공부 하나만 생각했는데… 빚더미 앞에 멈춰 섰습니다
- 최고관리자 오래 전 2025.08.01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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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입부: 채무 발생 전의 일상적인 삶 (15%)
남편과 함께 작은 밭을 일구며 사는 지극히 평범한 농촌 생활이었습니다. 일 년 내내 작물 돌보느라 손에 흙이 마를 날이 없었지만, 아이 둘을 도시로 대학 보내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어요. 그러던 어느 날, 큰애가 해외 유학을 고민하더군요. 평소에 열심히 공부했고 꿈도 뚜렷했기에, 어찌됐든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가진 건 없지만, 자식 교육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시키고 싶었어요. 그래서 은행에서 학자금 대출을 받고, 부족한 부분은 카드로 메우며 유학을 보냈습니다.
2. 전개: 채무 발생과 악화 과정 (25%)
처음엔 ‘몇 년만 고생하면 되겠지’ 싶었습니다. 매달 리볼빙으로 카드값을 넘기며 생활비를 조절하고, 농사일도 더 늘렸죠. 남편은 새벽 일찍 일어나 물류센터 아르바이트까지 병행했고요.
하지만 유학 생활이라는 게 생각보다 훨씬 돈이 많이 들었습니다. 등록금 외에도 생활비, 의료비, 비자 연장 수수료 등 예상치 못한 지출이 계속 생겼어요. 은행 두 곳에서 받은 학자금 대출은 점점 불어나고, 카드사에서는 한도를 늘려주더니 결국 이자 폭탄으로 돌아왔습니다.
4년 만에 빚은 8천만 원을 넘겼고, 이자만 매달 60~70만 원. 농사일로는 감당이 되지 않았습니다. 가끔은 밭에 앉아 멍하니 하늘만 쳐다봤던 적도 있어요. 손에 들린 건 호미인데, 마음은 무너진 벽돌처럼 툭툭 부서지는 기분이었죠.
3. 위기: 개인회생 결심까지의 상황 (20%)
결정적인 사건은 둘째 아이가 편찮아져서 병원비가 급히 필요했을 때였습니다. 카드 한도도, 통장 잔고도 바닥났고, 누굴 붙잡고 빌릴 수도 없는 상황에서 그야말로 길이 막힌 기분이었어요.
그때 마을 이장님이 조심스럽게 개인회생 이야기를 꺼내셨어요. 처음엔 “그런 건 사업 망한 사람들이나 하는 거 아니냐”고 반문했지만, 하루 이틀 생각해 보니 그나마 제게 남은 유일한 선택지 같았습니다.
상담받으러 읍내로 나가는 날, 한참을 거울 앞에서 옷을 고쳤습니다. 부끄럽고 자존심도 상했지만,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어요. 상담실에서 상황을 설명할 때는 손이 떨리고 눈물이 났습니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내가 잘못한 걸까?’ 하는 자책도 컸고요. 그래도 그분이 말해주셨어요. “책임지려는 이 선택이, 가장 용기 있는 거라고요.”
4. 해결: 개인회생 진행 과정 (25%)
서류를 준비하는 데만 두 달이 걸렸습니다. 농업 소득은 계절마다 달라서, 정확한 수입 증빙이 쉽지 않았어요. 그래도 남편과 힘을 모아 영농일지를 정리하고, 농협 통장 거래 내역도 제출했습니다.
변제계획은 월 28만 원씩, 3년간 갚는 조건이었어요. 법원 출석은 정말 떨렸지만, 판사님께 제가 왜 이 상황까지 오게 됐는지, 다시 성실히 살아가고 싶다는 의지를 진심으로 말씀드렸습니다. 결국 7개월 만에 개인회생 인가 결정을 받았습니다. 그날 저녁, 남편이 “고생했다, 이제 다시 시작하자”고 말해줬을 때 울컥했어요.
5. 결말: 현재의 변화와 희망 (15%)
지금은 변제 2년 차입니다. 매달 28만 원씩 꼬박꼬박 납부하고 있고, 빚의 무게도 조금씩 가벼워지고 있어요. 자식들도 이제 자기 자리에서 잘 살아가고 있고, 남편과 저는 다시 우리 삶을 가꾸고 있습니다.
요즘은 마을회관에서 사람들에게 제 경험을 조심스레 이야기하기도 해요. 혹시라도 빚 문제로 괴로워하시는 분이 있다면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혼자 끙끙 앓지 말고, 상담부터 받아보세요. 잘못된 선택은 아닙니다. 용기 있는 재시작일 뿐입니다.
저도 지금 그 길 위에서, 묵묵히 살아가고 있습니다.